감정의 언어를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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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지만,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는 일, 남겨진 자의 고요한 슬픔, 그리고 일상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마음의 과정. 은희경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런 감정을 아주 섬세하고도 단단한 문장으로 풀어낸 소설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이별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시간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끝내 표현하지 못한 말들 꺼내지 못한 기억을 어떻게 다루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는 작품입니다.

감정의 언어를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서평

기억과 상실 사이를 걷는 주인공의 시선

이 소설은 전쟁터에서 실종된 친구 ‘경하’를 중심으로, 주인공 ‘정미’가 그녀를 기억하며 서서히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경하가 실종된 사건 자체보다도,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에 집중하는 서사가 인상적입니다.

정미는 경하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 침묵, 오해, 애정의 순간들을 조각처럼 떠올리며 ‘작별하지 못한 감정’을 끌어올립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이 겪은 이별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됩니다. 책을 읽는 시간 내내 ‘나도 저런 감정을 품은 적 있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말하지 못한 감정, 쓰이지 못한 편지들

은희경 작가는 이 작품에서 ‘말의 부재’에 주목합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 끝내 쓰이지 못한 편지들, 흘려보낸 표현들이 소설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별 이후에도 계속 머물러 있는 감정의 잔재이며, 작가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하나 붙잡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경험, 그 말들이 마음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 그리움이라는 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남는 것이라는 걸 이 책은 잘 보여줍니다.

고요한 문장이 주는 진짜 위로

『작별하지 않는다』의 가장 큰 매력은 조용한 문장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의 힘입니다. 과장된 표현 없이도, 은은하게 번지는 슬픔이 글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울컥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서서히 마음을 울리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어딘가에 미뤄두었던 감정 하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이밀 듯 떠오릅니다. 그 감정은 아프지만 동시에 따뜻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큰 소음 없이 깊은 위로를 전해줄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주인공 정미의 기억을 따라가다가, 어느새 자신의 기억 속 누군가와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그 사람과 나누지 못한 말, 듣지 못한 마지막 인사,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 어딘가에서 반복 재생되는 장면들. 은희경 작가는 그 모든 것을 가만히 꺼내어 보여주며,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줍니다.

글쓰기와 필사에도 잘 어울리는 문장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필사용 도서로도 자주 추천되는 책입니다. 은희경 작가 특유의 정제된 문장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따라 쓰는 것만으로도 글쓰기 연습에 큰 도움이 됩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지만, 글로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문장은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필사하면서 자신의 이별, 상실, 기억을 천천히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죠. 글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마음을 차분히 정돈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됩니다.

요약, 결론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 인물의 실종을 통해 이별의 감정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작품입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 작별하지 못한 기억들을 문장으로 붙들어주는 소설이죠.

고요한 울림을 주는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비로소 마주하게 됩니다. 이별 후 마음이 허전한 날, 혹은 누군가의 부재를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한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슬픔을 정리하는 법을 찾고 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반드시 천천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